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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끄적임

[잡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마음가짐, 삶의 변화

by ROLONOR 2025. 3. 6.

나는 장례식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분위기부터 검은색 옷들, 슬퍼하는 사람들까지 내 눈에 담으면 그대로 눈물이 되어 나올 것만 같다.

 

상당히 미신을 잘 믿는 편이기에, 그래서 장례식장에 다녀올 때면 항상 소금, 후추, 고춧가루를 담은 뭉텅이를 쿠킹포일에 싸서 품에 넣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장소에 들렀다가 그 뭉텅이를 버리고 온다. 거의 매번 이래왔기에 혹시나 잊고 길을 나서면 괜히 불안해서 꼭 다시 집으로 돌아가 챙겨 나온다. 

 

지난 주말 친한 대학 선배의 어머니의 장례식을 다녀왔다. 주말에 연휴기간이라 올라가는 비행편 구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후 비행좌석이 하나 떠서 바로 결제했다. 새로고침만 열댓 번은 누른 것 같다. 다른 선배 형들 도착하는 시간인 7시에 빈소까지 도착하기 좋은 비행 편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는 그만큼의 마음과 기운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1개의 좌석이 적당한 시간에, 결제까지 잘 되었는데 그동안 이렇게 스무스하게 한번에 티켓팅을 한 적이 있었는가 싶다. 

 

그 선배형은 항상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 관계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다. 형 보러 가라는 계시인가 보다 하고 이것도 다 그 형이 스스로 곱게 쌓은 덕 덕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침에 동생내 집에서 나올 때 맞았던 눈과 눈 쌓인 마당의 모습이 괜히 더 생각났다. 피곤함에 바로 잠이 들었으나 불안함에 삼십 분도 되지 않아 눈을 뜨게 되었다.

 

앞뒤 좌우 가릴 것 없이 비행기 몸체는 흔들리고 있었고, 아마도 뒤 꼬리쪽에 타고 있어서 더 흔들리는 듯했다. 선반 위의 짐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적막이 흐르는 비행기 실내를 채우기 바빴고, 롤러코스터 타는 것 마냥 오르락내리락하는 비행은 심박수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왼쪽 창가에 앉아 계셨던 할아버지가 두 손을 꼭 쥐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15년 전 쯤 탔던 김포-제주 아시아나 비행기가 3번인가 제주 공항에 착륙 시도를 하다가 결국 다시 김포로 회항을 했는데, 비행기의 떨림은 그때는 10배도 더 되게 느껴졌다. 아마도 내 공포심과 비례했던 모양이다. 당시엔 20대에 잃을 것도 많지 않았고 용감했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가족들 얼굴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고 무언가를 시작할 때 고민과 걱정이 가득한 아저씨가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겨우겨우 랜딩기어를 내리고 창문 밖으로 활주로가 보이기 시작하자 마음 한쪽에서 안도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비행기는 다시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솓아오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뒷골이 서늘한 느낌,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맺히는 느낌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왼쪽 할아버지께서는 어느새 폰을 키시고 카톡창에 글을 타이핑하고 계셨다. 맨 위에 보이는 이름은 '아내', 그리고 몇몇 어른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화가 오고 간 다음(아마도 비행기 이륙 전에 남기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께서 떨리는 손으로 톡톡 글을 쓰고 계셨다. '비행기가 너무 흔들린다, 걱정하고 있는데 방금 착륙을 못하고 다시 이륙을 했다. 별일 없겠지? 보고 싶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톡을 남기시고는 눈을 감으시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내 좌석의 왼쪽 팔걸이는 할아버지의 오른손 전용이 되어있었다. 꽉 잡으며 큰 숨을 계속 쉬셨다. 

 

지난 무안 공항 사고 뉴스를 봤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사고 전 가족들과 톡을 나누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순간 나도 폰을 키고 와이프에게 톡을 보냈다. 하지만 바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윈디닷컴에서 확인한 날씨는 제주 주변부터 부산, 포항까지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심한 동풍이 불고 있었다. 비행기들의 이착률 방향을 종종 바뀌지만 이날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맞바람이라서 더 흔들림이 심했던 걸까?

 

어찌 됐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여기가 천국이 아닌 이상 무사하게 비행기는 착륙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재착륙을 하기까지 덜린 15분은 마치 30분이 넘게 느껴졌고, 머릿속에서는 정말로 비행사고가 나서 잘못되는 어쩌나, 가족들을 다신 못 보면 어쩌나 하는 비관주의적 시나리오만 펼쳐졌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에 죽음에 대해 준비가 하나도 안된 내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더 뜻깊게 살게요라고 중얼댔던 스스로가 지금도 많이 웃기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웃기다기보다는, 참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러한 죽음이라는 것 앞에는 어쩔 수 없이 아주 나약하구나 하는 허탈함인 것 같다.

 

짧은 삶에 고군분투하며, 작은 일에 스트레스받고, 화가 나고, 슬퍼했던 순간이 무의미 하게 느껴졌달까? 어차피 이런 사건 사고들로 생을 마감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인데, 스스로에게 얽매였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사실 이런 감정들은 종종 느끼기도 하고, 더 태연하게 내려놓고 살자라는 식으로 내 자신을 세뇌했던 때는 많았다. 

 

지금 느낌이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얼마나 더 지속되고 오래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때론 이런 경험들이 내 삶을 더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하고 내 주위의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아끼게 되는 계기가 된다.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 나보다도 훨씬 오래 사신 할아버지께서도 식은땀을 흘리셨던 모습과 완전히 랜딩기어가 활주로에 닿는 순간 그 분이 작게 외쳤던 '살았다'는 내 눈을 붉게 만들기 충분했다. 무슨 감정이었을까. 더 살 수 있어서?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못다 한 내 버킷리스트를 다시 이룰 수 있어서? 

 

'그래요, 살았네요.' 라고 작게 맞장구치고 눈을 감았다. 누구에게 했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라고 속으로 열 번도 넘게 외쳤다. 그리고 이날 집에서 먹은 저녁밥이 최근 수년 간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이 좋았다. 

 

행복과 만족이 멀리있는 것이 아님은 머리로는 아주 잘 알고 있지만, 한 번씩 몸소 느낄 때면 더 크게 다가온다. 작은 일에 슬퍼하지 말고 노여워하지 말자. 매 순간에 감사하고 곁에 있는 모든 것들에 고마움을 느끼는 하루하루를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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